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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도움 지식

2025 을사년, 우리나라 역사의 을사년 사건, 을사늑약(을사조약), 을사오적

by 아빠용돈주세요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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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25년 을사년을 앞두고 과거의 을사년들을 돌아보니 참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더라고요. 특별히 인상 깊은 을사년 사건들을 함께 살펴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1905년 을사년의 '을사늑약'입니다. 이 사건은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슬픈 역사예요. 고종황제가 "朕死於此(짐죽어여기)"라며 "나는 여기서 죽겠다"고 비통해하셨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죠.

 

하지만 재미있는 건 우리 역사에서 을사년마다 큰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는 거예요!


역사적 을사년의 주요 사건들

▶ 1485년 을사년

조선의 새로운 시작 성종 16년에는 '경국대전'이 완성됐어요. 경국대전이 뭐냐고요? 쉽게 말해서 조선의 법과 제도를 집대성한 책이에요. 마치 오늘날의 헌법과 비슷한 역할을 했죠. 이때부터 조선은 더욱 체계적인 나라가 되었어요. 경국대전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성종은 13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매우 총명했대요. 신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답니다. "백성들이 법을 잘 알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생각했거든요.

▶ 1545년 을사년

을사사화의 비극 명종 즉위년에 일어난 '을사사화'는 권력다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에요. 윤원형과 이기 등이 주도해서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죠. 당시 11살이었던 명종을 대신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윤원형 일파가 정적들을 제거한 거예요. 특히 양재역 벽서사건을 빌미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죠.

 

재미있는 건 이 사건 이후 조선 사회가 크게 바뀌었다는 거예요. 사림파가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오히려 이후 더 강해져서 조선 후기 정치를 주도하게 됩니다.

▶ 1665년 을사년

현종의 예송논쟁 현종 6년에는 '을사예송'이라는 흥미로운 논쟁이 있었어요. 뭘 가지고 그렇게 논쟁했냐고요? 바로 자기 어머니의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거였어요! 지금 들으면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렇게 싸웠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답니다.

예법을 중시하는 유교 사회에서 이는 단순한 상복 문제가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균형, 그리고 정치적 주도권과 관련된 문제였거든요.

▶ 1785년 을사년

정조의 개혁 정치 정조 9년에는 수원화성 건설이 시작됐어요. 단순한 성곽 건설이 아니라 새로운 계획도시를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였죠. 정조는 이를 통해 강력한 개혁정치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어요. 수원화성은 당시 최신 과학기술을 총동원해서 지은 건축물이에요.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라는 기계로 무거운 돌을 들어올렸다는 게 특히 유명하죠.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뛰어난 건축물이랍니다.

 

근현대 을사년의 의미

▶ 1905년 을사년

을사늑약의 아픔 앞서 잠깐 언급했던 을사늑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11월 17일,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를 강압해서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체결했어요.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까지 동원해가며 협박했다고 해요.

고종황제와 민족지도자들이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말았죠. 이후 민영환, 조병세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순국했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났어요.

▶ 1965년 을사년

한일협정 체결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해이기도 해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조약이었지만, 당시에도 찬반 논란이 매우 컸고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죠.

 

을사오적(乙巳五賊)과 그들의 매국 대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선 다섯 명의 매국노들과

1. 이완용(李完用, 1858-1926)

을사늑약 당시 외부대신(외무부 장관)

받은 대가:

  • 백작 작위
  • 현금 15만원
  • 북청(함경남도) 일대의 광산 채굴권
  • 금메달, 훈장 다수

2. 이지용(李址鎔, 1870-1928)

을사늑약 당시 내부대신(내무부 장관)

받은 대가:

  • 자작 작위
  • 현금 10만원
  • 평안도 지역 산림 채벌권

3. 이근택(李根澤, 1865-1919)

을사늑약 당시 군부대신(국방부 장관)

받은 대가:

  • 자작 작위
  • 현금 8만원
  • 함경도 지역 광산권

4. 박제순(朴齊純, 1858-1916)

을사늑약 당시 학부대신(교육부 장관)

받은 대가:

  • 자작 작위
  • 현금 7만원
  • 서울 주변 부동산

5. 권중현(權重顯, 1854-1934)

을사늑약 당시 농상공부대신(농림상공부 장관)

받은 대가:

  • 자작 작위
  • 현금 5만원
  • 평안도 지역 채광권

이들이 받은 뇌물 총액은 당시 화폐가치로 약 45만원에 달했으며,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습니다. 특히 이완용은 을사늑약 체결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이권과 뇌물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내내 친일 행각을 이어갔으며, 대부분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완용의 경우에는 1926년 사망 직전까지도 서울 북촌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보면 재미있는 게 60년마다 한일 관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거예요. 1905년 을사늑약, 1965년 한일협정... 그래서 일부에서는 2025년 을사년에도 한일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자, 이렇게 을사년마다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살펴봤는데요. 매 을사년마다 우리 역사의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게 흥미롭지 않나요? 물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 2025년 을사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과거의 교훈을 잘 새기면서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소중한 교훈을 담고 있으니까요. 2025년 을사년에는 우리 모두가 지혜롭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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